심 연자 노인 딸 김은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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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 은자 댓글 2건 조회 1,940회 작성일 08-11-29 11:28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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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연자 노인 딸 岸初 金 銀 子
사람의 수명이 해가 갈수록 길어지는 추세이라 노인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만 할 시기에 이르렀다. 핵가족 시대로 이미 굳혀져 있는 지금의 현상으로 맞벌이 부부가 많아졌고 바쁜 생활 때문에 예전처럼 효(孝)의 관점으로 문제를 풀려 하면 해결이 나지 않는 일이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 고민을 덜어주기 위하여 위탁 시설을 마련하여 치매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노인들을 돌보고 있다.
내 어머니도 팔십이 넘어가자 바라지 않던 치매가 찾아오고 말았다. 몇 년 전부터 가물가물 기미가 보이더니 이제는 돌보아야만 하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신청하고 근 반년을 기다린 후에야 이 시설에 들 수 있게 되었다. 아침 9시경이면 어김없이 차가 도착하여 노인을 모셔갔다 저녁 5시 반경이면 다시 집까지 모셔오곤 한다. 따뜻한 식사는 물론이고 풍선놀이, 간단한 공작, 춤과 체조, 노래도 가르치니 열 효자 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이 돌보아야 하는 의무를 센터에서 대신 해주니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팔십 노인을 데려다 왜 이런 것을 만들게 하는지 모르겠다.”
종이를 접어 만든 작은 꽃다발을 들고 들어오시는 어머니의 말씀이다.
“누가 주인인지, 매일 이렇게 잘 먹여주니 받아 먹기만 하여 염치가 없구나.”
처음 노인을 돌보아 주는 기관에 가게 되었다고 얘기를 건네자 어머니는 기겁을 했다.
“내가 무슨 병이냐, 누가 알까 남사스럽다. 나는 아픈 곳이 없어. 절대로 가지 않아.”
냄비에 가스불을 켜놓고 잠이 들어 불을 낼 뻔했다. 며칠 동안 화독내가 집안에서 떠나지 않았다. 자식들이 자주 들르기는 하지만 혼자 사는 어머니가 또 무슨 사고를 낼까 노심초사(勞心焦思)였다. 어머니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는 모양이다.
“이 옷 누가 사 온 거니? 처음 본다.”
몇 해 입던 옷을 새것으로 말하니 이처럼 잊어버리는 속도가 빨라 걱정이었다. 몇 년 전부터 쓰던 압력 밥솥은 이미 사용 방법을 잊은 지 오래이다. 냉장고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기억을 하지 못한다. 13층 아파트에 사는 어머니는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요즘에도 창문 등 문이라는 문은 꼭꼭 잠그고 산다.
매일 무언가를 찾고 있다. 책갈피며, 이부자리 사이며, 베갯잇 틈이며…. 집안의 물건들이 뒤섞여 어느 때는 부엌칼이 옷장 설합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자신의 잃어버린 젊음을 찾고 있는 것일까.
“내가 뭘 찾지?”
사정이 이러니 우리 지식들은 어머니를 어르고 달래는 줄다리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가지 않으면 다시는 찾지 않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으로 치매센터에 가게 되었다. 어머니는 인생을 포기한다는 마음으로 처음 그곳에 갔다. 같은 증상의 노인들이 열분 정도 계셨다. 첫 대면의 노인이건만 반갑게 맞아준다. 악이라곤 조금도 없이 천진난만하여 귀엽기까지 했다. 이제는 어머니가 교회 보다 먼저 센터에 갈 날만 기다리게 되었다. 토, 일요일 쉬는 이틀을 참지 못하고 자꾸 물어본다.
“내일도 가는 날이냐?”
월요일이 되니 밤 12시 반에 일어나 머리를 감고 갈 준비를 하신다. 재미가 단단히 들었나 보다. 두서 없어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듣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꿰 맞추면 대강은 어머니 뜻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가 있어 다행이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그 속마음을 알길 없었는데 이제는 깊은 마음까지 열어 보이니 얼굴이 많이 밝아져 고맙다. 센터를 교회라고 말하는 것은 아직도 여전하나 남자도 섞여 있어 더욱 재미나는 모양이다. 늙으나 젊으나 이성이 함께 해야 더 흥미로운 것이 인지상정인가 보다.
치매는 사람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지우개가 아닐까. 싫든 좋든 누구나 늙어지면 이 지우개가 불현듯 찾아와 활동을 하게 된다. 과학자들은 사람이 일생을 사는 동안 기본 두뇌의 반도 쓰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무언가 사용해야 하는 공간이 필요하다면 쓰지 않은 여유분이 넉넉히 있는 터인데 왜 애써 쌓아놓은 기억까지 지워버리는 것일까.
지우개는 참 좋은 역할을 하는 문구이다. 연필로 쓴 잘못된 글들을 말끔하게 지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지우개는 다시는 쓸 수 없도록 그 기능까지 지워버린다는 것이 딱한 일이다. 요즘에는 나이와 상관없이 젊은이에게도 이 지우개가 찾아온다고 하니 정말 겁나는 일이다.
나는 한때. 제발 이 쓴 기억만은 잊게 해 달라고 소원한 적이 있었다. 밤낮으로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잠도 이루지 못하고 애끓던 시간들. 세월이 지나가자 이 고뇌했던 기억들은 자연스레 아름다운 추억으로 변하여 갔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한다. 그런데 그간 살면서 만들어진 자신의 역사가 감쪽같이 사라진다니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너무 사는 것이 재미없다.”
초점 없이, 누구라는 대상도 없이 어머니 혼자 중얼거린다.
신은 참 짓궂은 것 같다. 살아온 경험들이 모여 쌓인다면 늙어갈수록 젊은이들에게 존경 받는 노인으로 그 위상이 더욱 빛나련만, 이 많은 경험들은 자꾸자꾸 지워지고 결국에는 어린아이 보다 못하게 단순하게 되고 마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대변을 가리지 못하고, 밖에 나가면 집도 찾아오지 못하는 그래서 미아처럼 헤매게 되는 상황이 되니 말이다..
아무런 고통도 없이 항상 행복하다는 천당은 과연 있는 것일까?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하여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핏덩이로 태어나 활기차게 새로운 것들을 익혀가는 어린 시절을 거쳐 늙기까지 익혔던 기억들이 어느 날인가 하얗게 사라져버리고 마는 과정을 신께서 의도하셨다면 아마도 그만한 깊은 뜻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갖게도 된다.
세상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어 아슬아슬 곡예 하듯 넘어가는 삶이라 해도 긴장 속에서 이루어 나가는 성취감이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수고도 하지 않고 시지도, 떫지도 쓰지도 달지도 않고, 게다가 간 까지 빠진 그럴 듯하게 보이는 요리가 편안함이라면 이를 거저 준다 해도 필경 나는 지금처럼 불편하고 거친 생활을 택했을 것이다. 내 존재 의식을 잃어버리기 전에 지금을 마음껏 체험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댓글목록
산곡행복의집님의 댓글
산곡행복의집 작성일
늘 관심가져 주시고 이렇게 좋은 글 올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어르신 모시는데 더욱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직원 일동
김 은자님의 댓글
김 은자 작성일수고 해 주시는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어디 쓸 곳이 없어 이곳에 넣었습니다.